목차
떼제베(TGV) 리옹-니스
정든 생제르맹을 떠나 니스로 가는 날! 비행기가 빠르고 저렴했지만 유럽에 왔으니 떼제베는 타보고 싶어서 떼제베로, 그것도 1등석으로 예약했다. 3주전에 예약했는데도 편도 26만원🙃

10시 기차라 아침 8시 반쯤 체크아웃을 하고 우버를 불렀는데 한참동안 안잡혔다. 출근 시간이라 많이 막혀서 그런지 기사들이 잡았다 취소하길 반복.. 볼트도 마찬가지였다. 이대로는 늦을 것 같아서 체감 30kg에 육박하는 캐리어를 들고 63번 버스를 탔다. 숙소 근처에 한번에 가는 버스가 있어 다행이었다.
라뒤레 마카롱 : 패션후르츠, 딸기

리옹역에 도착하니 출발 40분 전. 여유가 있어서 라뒤레에서 마카롱을 샀다. 호텔 앞에 라뒤레가 있었는데 7박 동안 안먹다가 여기서 먹네 결국. 베스트는 피에르 에르메와 마찬가지로 패션후르츠라고 했다. 패션후르츠와 딸기 하나씩 샀다. 가격은 개당 2.5유로.
기대하고 먹었는데 실망했다!! 뭐야 맛없어. 피에르 에르메가 훨씬 부드럽고 맛있었다. 라뒤레는 그냥.. 평범에서 조금 나은 맛? 다시 사먹고 싶진 않은 맛이다. 남은 동안 마카롱은 피에르 에르메에서 먹는 걸로!
Ladurée
gare de Lyon, 75012 Paris
리옹역 홀2로 가는 길에 있다. 마카롱 개당 2.5유로. 베스트는 패션 후르츠.
떼제베 일등석

QR코드 티켓을 찍고 들어갔다. 왜인지 휴대폰으로 캡처해둔 QR코드를 갖다대면 자꾸 애플페이가 켜졌다. 인쇄해둔 티켓으로 찍고 무사입장. 역시 해외여행할 때는 바우처를 인쇄해두는 게 안심이 된다. (인쇄해준 남편 고마와🫶)

자리는 아주 널찍하다. 마침 내 자리 뒤에 짐 놓는 곳이 또 있어서 짐도 가까이 둘 수 있었다. 자리에 콘센트와 옷걸이도 있고 일등석 답쥬! 소매치기 걱정은 아예 내려놓을 수 있는 분위기였다.

사실 6시간 가는 게 좀 막막했었는데 예상외로 거뜬했다. 처음 1시간은 바깥 구경하느라 정신 없었다. 파리를 벗어나자마자 넓은 들판과 노란 꽃밭이 반복해서 펼쳐지는 게 장관이었다. 방목된 양과 젖소도 구경할 수 있었고 풍력발전기도 멋스러웠다.
이어서 2시간은 책을 읽었다. 정해연 작가의 '홍학의 자리'. 범죄스릴러 추리소설은 처음 읽어보는 장르였는데 마치 영화 한편을 본 것처럼 빠져들었다. 반전의 반전을 거듭한 소설. 추천이다.
책을 읽고 또 바깥 구경을 하니 금방 니스에 도착했다. 바닷가를 따라 펼쳐진 도시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남쪽으로 갈수록 날씨가 따뜻해지는 느낌도 확실히 들었다.
따뜻한 니스 도착

열차에서 내린 순간 강한 햇볕이 내리쬈다. 곧바로 선글라스를 집어 쓰며 생각했다. 지난주에 파리에서 코트 안사길 잘했다고. 프랑스가 참 큰 나라라는 것도 실감났다. 자그마한 우리나라도 서울과 제주의 기온차가 상당한데 하물며 파리와 니스는 다른 나라 같을 수밖에. 발목까지 내려오는 원피스와 진주목걸이, 쨍한 초록빛의 메르시 에코백이 니스에 잘 어울려서 만족스러웠다.
호텔 몽시니 : 니스역 주변 3성급 호텔

니스역에서 북쪽으로 도보 7분 거리에 있는 호텔이다. 구시가지에서 도보 25분이나 걸린다는 걸 알고 예약한 곳이다. 파리에서 7박 숙박비로 200을 넘게 쓴 것이 너무 아까워서 니스에선 작정하고 숙박비를 낮췄다. 여기는 1박에 9만원이 안된다. 하지만 룸 컨디션은 파리 호텔보다 훨씬 좋았다. 방 크기는 절반도 안되긴 하지만 매우 신식이고 조식도 포함!

화장실 역시 작지만 깨끗했다. 하얀 대리석 인테리어가 제법 고급스러워 보이기도.

세면대 왼편으로는 샤워부스가 있다. 여닫이 문도 있어서 샤워할 때는 문을 닫으면 된다. 그래, 이 정도는 돼야 3성급이지ㅠ 여기는 최소 신라스테이 수준은 되는 느낌이다. (방 크기 빼고)
오텔 몽시니 Hôtel Monsigny
17 Av. Malaussena, 06000 Nice
니스역 도보 7분. 해변까지는 도보 25분 거리지만 호텔 앞에서 트램 타면 10분 소요. 룸 컨디션 좋음.
니스 숙박비 아끼려면 가성비 호텔로 추천!
니스 구시가지 구경
숙소에 짐을 푸는데 시간을 꽤 많이 썼다. 방이 좁아 캐리어를 열고 닫기 불편할 것 같아 입을 옷들을 꺼내 옷장에 넣어뒀다. 근데 캐리어 닫으면 안 꺼낸 것들이 생각나서 몇번이나 열고 닫았는지ㅋㅋ

니스는 파리보다 남쪽에 있어서 해가 20분 정도 일찍 진다. 그래도 8시 넘어서까지 밝긴 하지만. 서둘러 나와본 니스 모습은 휴양지다웠다.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파리의 건물들과는 달리 니스의 건물들은 알록달록하고 사랑스러웠다. 근데 광장 기둥 꼭대기에 앉아있는 동상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상하는 것 같기도 하고, 요가하는 것 같기도 하고ㅋㅋ

니스는 도로 가운데로 트램이 다닌다. 노선도 꽤 많다. 가격은 1.5유로. 트램을 보니 10년 전에 다녀온 홍콩이 떠올랐다. 숙소에서 해변까지 꽤 멀어서 트램을 자주 이용할 것 같다.

니스 해변가에 도착. 평화롭고 한적했다. 해변에 닿아 부서지는 파도 소리와 인근 공항에서 이륙한 비행기의 엔진 소리가 서로 박자를 맞추는 듯했다. 탁, 탁, 바닥을 찧는 스케이트보드가 소리를 더욱 풍부하게 했다. 그리고 그 위로 버스커가 부르는 샘 스미스의 노래가 퍼졌다. 그 모든 소리가 예뻤다. ASMR 영상으로 만들면 조회수가 상당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마냥 좋았지만 아무리 니스여도 반팔을 입고 저녁 바닷가를 누비는 건 너무 추웠기 때문에 서둘러 밥을 먹으러 이동했다.
피자 한판 도전 : Casa Leya

호텔리셉션이 추천해준 식당은 Di Piu였지만 7시부터 저녁 시작이라 기다릴 수가 없었다. 바로 뒷골목에 있는 평점 4.6점짜리 Casa Leya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1인 1피자를 하길래 나도 시켜봤다. 피자는 Honey and Goat Cheese로 골랐다. 우리나라에서 먹는 고르곤졸라 피자랑 비슷한 맛이었다. 다만 고트치즈가 덩어리로 있어서 그 냄새가 좀 강했다. 아직 나는 고트치즈까지는 섭렵하지 못했다. 아, 지금 생각났다. 파리 호텔에 한입 먹은 체다치즈 두고 왔네.. 아무튼 양이 많아서 딱 절반밖에 못 먹었다.

모나코 비어. 설명에 맥주 + 무슨 시럽이라 돼있길래 그냥 살짝 단맛일 줄 알았는데 새빨간 애가 나왔다ㅋㅋ 설명대로 시럽 탄 맥주맛이다. 달달하니 나쁘지 않고 새로웠는데 잔이 끈끈해진다.
오늘부로 확신했다. 구글맵 평점은 순엉터리다. 대체 왜 여기가 4.6점인지 모르겠다..ㅎㅎ 맛없다는 얘기가 아니라 4.6점까지인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 파리에서도 오히려 4점 초반대 식당들이 더 맛있었다. 평점 맹신하지 말아야지!
Casa Leya - Vieux Nice
36 Cr Saleya, 06300 Nice
니스 해변가 바로 뒷골목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평점 4.6인데 존맛까진 아니고 평범하게 맛있는 맛. 가격은 별로 안 비쌈. 피자 한판 16유로, 모나코 맥주 5유로.
노을지는 니스 해변

파리에 정원에는 초록 의자가 있다면 니스에는 파란 의자가 있다. 기념품샵에서 이 파란 의자 모형을 파는 걸 보니 모든 해변에 있나보다. 다들 여기 앉아서 책을 읽거나 멍때리고 바다를 본다. 나도 그 중 하나였다. 멍하니 바다를 보고있으니 속이 시원했다. 내일 해가 있을 때 더 열심히 즐겨야겠다.
와인과 독서 : 아니 에르노 '단순한 열정'

이대로 끝내기 아쉬워 까르푸에 가서 하프 보틀 와인을 사왔다. 37.5cl로 꽉 찬 2잔이 나온다. 하프 와인이 몇개 없어서 그 중 골랐더니 맛은 썩... 프랑스는 와인의 나라라는데 아직 맘에 드는 와인을 못 만났다. 내일은 좀 더 찾아보고 맛있는 걸로 사와야지!
책은 프랑스에 왔으니까 아니 에르노의 소설 '단순한 열정'으로 골랐다. 2022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인데 자전적 소설이라는 특이한 장르를 개척했다고 한다. 작가는 사람의 감정을 잘 짚어낸다. 인간이기에 느낄 수밖에 없는 지저분하고 못된, 꾸깃꾸깃하고 찌질한 감정을 잘 표현한다. '맞아 솔직히 나도 그런 마음일 것 같아'하고 무릎을 탁 치게 만든다.

막상 오늘 한 거라곤 파리에서 니스에 넘어온 것, 밥을 먹은 것 딱 두개인 것 같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여유가 컨셉이니까! 서두르지 말고 조급해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을 즐겨봐야겠다.